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때 나는 꽤나 수다스럽고 말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안다. 나도 안 믿겨.. -_-)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좋아했고,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이 먹힌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말이라는 게 한 번 내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언제부터 깨달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그걸 깨달았던 후부터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두려움의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내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리고 말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나 자신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더욱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모르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러하기도 했지만, 나에 대한 발언이 순수히 나만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 때문에 훨씬 더 그러하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어정쩡함을 말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울 때가 있었다. 어느 영역에 속해있다는 기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보기에 오버그라운드와 메이저에서 놀 수 있는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취향과 감성과 행동은 소위 마이너에 가까워서,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어정쩡함"이라는 것을 동반했다. 이러한 어정쩡함이 처음에는 낯설다 적응이 되고, 이를 표현할 "경계"라는 멋진 단어를 찾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며 경계를 걷는다는 것, 정말 있어보이지 않는가.
나이가 들어 소심해지기도 하고^^; 해가 갈수록 말의 무서움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여, 이제는 나를 경계인으로 소개하는 것조차도 민망해서 못 하겠다. 그저 "경계는 무슨 경계. 네 놈은 그저 게으르고 안일하여 어느 편을 정하여 거기에 헌신할 여력조차 없는 것 뿐이야" 속으로 뇌까리며 스스로를 꾸짖을 뿐. 스스로 경계를 걷는 삶을 택한 몇몇 사람들도 알고 있는 마당에, 감히 나 따위가 경계를 논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여전히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가끔 어느 쪽에 설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태도를 먼저 갖추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요즘을 보낸다. 송두율 교수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W(Where the story ends) - 경계인
나의 눈은 밝고 나의 귀는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니
불안하지 않아 두렵지도 않아 언제나처럼 바람이 부는 이 곳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바로 그 길을 선택했으니
때론 끌어안고 때론 구별하며 나의 진심과 나의 균형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
지루한 다툼 차가운 그늘 속에도 나의 진실은 여기 맴돌고 있으니
이젠 사라지길 부디 그러하길 너의 이름과 너의 기억들
다시 보게 되길 나를 달래주던 제주의 바다 또 빛의 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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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