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밥을 거르는 게 일상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라도 나가서 이마트 푸드코트를 가거나 김가네 김밥이라도 사 들고 들어왔는데, 이제는 산책 겸 나가도 밥을 먹을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고, 고작 스타벅스 커피나 하나 받아서 터덜터덜 들어온다. 커피를 사러 나갔다 들어올 때쯤 교대해서 계시는 경비 아저씨는 "어이구, 점심 안 먹어요?"하시면서 혀를 끌끌 차시고,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문제는, 절대 그 시간에 배가 고파오지 않는다는 거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도 믿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밤에 너무 많이 먹어서 다음날 식욕이 없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꾹 참고 밤에 저녁밥 한 그릇-진짜 한 그릇-만 먹고 자도 다음날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아예 굶어보는 거다. 그래서 저녁도 걸러봤다. 이렇게 꼬박 위를 비웠으면 다음날 당연히 배가 고파야 할 터이나, 이런, 상황은 그대로였다.
이 상태로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떨어지는 일-정말 '떨어지는' 일들-을 해 낸다.
그리고 서대문역에 도착할 때쯤, 그제서야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배고프다, 허기가 진다...라는 느낌이 아닌, 말 그대로 먹고 싶은 욕구.
물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도 열량이 필요하니까, 커피를 마시고 초콜렛을 밀어넣는다. 그런데 여기서 밥상을 대하기는 싫은 거다. 이어지지 않을 이야기에 가끔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한편으로 그 상황에서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하며 생긋 웃을 수 없는 내 좁은 마음이 싫다. 나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일 텐데도, 왜 나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뒤늦게야 누군가의 정치를 눈치 채고 치를 떨며 싫어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오는 방어 기제일지도 모르겠다. 희소한 자원을 얻기 위한 모든 행위가 정치라 할 때, 나 또한 정치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아? 그런데 이렇게 지금 생각하는 내가 우연히 당신들이 먹는 단 맛 한 조각을 맛본 후에, 그 맛에 이끌려 당신들 식의 정치에 한 발을 담글 수 있다는 거,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아서 두려워. 그것이 주는 비루한 작은 단 맛에 길들여져서 그것이 아주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게 될까 겁이 나. 그리고 평생 그 수준의 정치만 하다 죽을 거라는 거, 그게 제일 무서워.
웃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식탁이 굉장히 중요한 삶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식탁에서만큼은 누군가의 웃는 표정과 던지는 말들에 대해 뒷생각 따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꾸 의중을 탐색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게, 진부한 표현 그대로, 소름끼치게 싫다. 뒷생각따위 하지 않고 던진 내 말과 행동이 어떠한 식으로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그러한 식탁 앞에서 먹거리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
어쩌면 나를 지키고 싶어, 내 몸을 학대하는 날들의 연속.
언제쯤 그러려니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마음이 더 자라서 냉소가 아닌 넉넉함으로, 이러한 자리를 진짜 웃음으로 견딜 수 있을까?
─ tag 직장일기

rss
언젠가 그러려니 하며 포기할 날이 오기야 하겠지만, 그 때는 그 때가서 생각하고.. 정말 맛있는 밥 먹자. ^_^
내가 그 무리 안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경계밖에서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만들더라...
그리고 어느 자리에 앉아야할까.....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디까지 회사의 조직을 알아야하고, 나를 드러내야할까?
그게 싫으면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기.
말없이 앉아서 묵묵히 수저를 입안으로 넣었다뺐다하는 것이 식사는 아니였잖아...
화기애애함...의미과잉없이, 오해없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가는 식당만 뺑뺑이 도는 건 여기서도 결국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있었구나. 너희들이랑은 굳이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강박없이 넘어가던 식사시간이었는데, 여기서는 말을 간간이 하면서도 오히려 더 얹히는 기분이 드네... 밥 먹자.
아침에 일어나면 그게 젤 걱정이다.. 오늘도 이 아이가 어디까지 굶을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딱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주말에 맛난거 먹자!" 라는 말밖에.. 살자 살자.. 잘 먹고 잘 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
언젠가 그러려니 하는 날이 오겠지. 나이 들면서 나도 좀 넉넉해질테고..(과연?) 그러니 조금만 못 본 척 넘어가주셔.
아, 이 부분 정말 메인다. 나중에 트랙백 좀 해가도 될까?
트랙백해 가셔도 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