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배우던 꼬꼬마 시절부터 나의 음악적 호오는 확실했다. 나는 멘델스존이 재미없었다.
군말없이 열심히 연습에 정진해도 모자랄 판에, "이 아저씨 곡은 재미가 없어요." 소리나 찍찍 해댔으니
그 당시 선생님이 날 매우 건방지게 봤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좀 더 머리가 굵어지고 자기가 되게 복잡다단한 인간인 줄 착각했던 10대 시절이야 오죽했을까.
그가 창작가로서도, 그리고 누군가의 재능을 발굴해내는 뛰어난 청자이자 비평가로서도 천재임은 인정.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군더더기 없는 단정함과 반듯함,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것 같은 "엄친아"스러움은 다소 비뚤어진 나같은 청자에게는 공감을 받기 어려웠던 거다. 더구나 나중에 알게 된 그의 배경은 유태계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평생 안 꼬이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내용이라서 "흥, 역시 엄친아였어. 그러니 음악이 이렇게 모범적이지. 흥!!" 식의 시니컬한 태도를 부추겼다. 심지어 이름마저 Felix라니,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며칠 전, 듣고 있던 음악들에 물려서 벅스를 뒤지다 글렌 굴드의 컴필레이션-_- 앨범 <...And Serenity>를 들었다. 글렌의 사후, 가지고 있는 음원으로 적당히 스마트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건드릴 수 있게 잘 버무려서 돈 좀 벌어보겠다는 Sony BMG의 빤한 의도가 드러나는 기획 음반이었지만, 그 날은 긴 집중을 요하는 앨범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 그래도 글렌이니까 평균 이상은 되겠거니 했던 이 음반에서 멘델스존의 무언가 9번을 들었다. 아니, 전에도 무언가 9번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 그러니까, "발견했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그악스럽게 차라리 나쁘게 굴겠다며 위악 떨 필요 없다.
잘 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에 대해 뒤늦게 "속았다" 분노하며 그러한 마음을 품었던 자신을 바보라 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평균만큼 착하고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를 그대로 살아내면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조용조용 기도를 하면 되지 않겠나.
눈을 감았다. 선율과 함께 여러 마음들이 쏟아졌다. 편안하다.
결국 이 곡때문에 나는 글렌 굴드의 쇼팽/멘델스존/스크리아빈/프로코피예프 곡집을 구매했다. -_-
어쩌면 그렇게 내 취향이 아닌 작곡가들만 모아 놓았던지, 잠시 2만 몇 천원이 아까워지려고 했으나
여기 실린 무언가 다섯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
여전히 나에게 멘델스존은 엄친아고, 그의 다른 곡들과 친해지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순간에 나에게 이러한 곡으로 기도하게 한 점에 대해서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뭐, 이것도 역시 위대하신 연주자발이 크다고 보지만. (심술)
(왠지 순순히 인정하면 지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난 아직도 비뚤어져 있는 걸까....-_-;;;;)
Mendelssohn, <Song without Words for piano No. 9 in E major, Op. 30-3>
performed by Glenn G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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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운로드는 요즘 힘들어서,
음원 판매 사이트에서 바로 구입했어요.
-_-)=bbbb
노래 참 좋죠? ^^